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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 프레슬리 혹은 로큰롤 황제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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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71회 작성일 13-04-08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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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은 말했다.

엘비스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하지만 로큰롤을 만나기 전의 엘비스 프레슬리는 평범한 시골 청년에 불과했

다.

숫기 없는 시골 청년을 로큰롤의 제왕으로 바꿔 놓은 건 과연 무엇일까?

답은 엘비스가 즐겨듣던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음악에 있었다.

론큰롤의 제왕이 세상에 태어난 지 올해로 75년 그리고 세상을 등진 지 벌써 33년. 헤성처럼 나타났다는 말이 딱 어

울리는 이뮤지션은 달콤하면서 힘 있는 목소리와 얄궂은 미소로 세계인의 마음을 뒤 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로큰롤 스타도 알고 보면 낡아 빠진 기타를 둘러메고 수줍게 노래하던 가난한 시골 청년

이었다.

우연히 음반 프로듀서 샘 필립스의 눈에 뛴 엘비스는 순식간에 1950년대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수많은 곡이 음반 차트 1위에 올랐고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했음은 물론, 열광적인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한 공연장

을 누볐다.

당시 미국 사회는 인종, 계급 차별로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엘비스의 영혼이 담긴 목소리는 모든 사람의 사랑을받았

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청년 엘비스가 아닌 말년의 엘비스를 기억한다.

살이 쪄서 불언난 몸을 억지로 나팔 바지에 넣고 땀을 흘리며 뻘뻘 흘리며 노래하는 모습.

개그맨들도 엘비스를 우스꽝스럽게 패러디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건 마약에 찌들어 맥이 풀린 한물 간 스타가 아니라 전 세계에 로큰롤 열풍을 몰고온

'제왕'엘비스프레슬리다.


흑인 음악을 흥얼거린 엘비스

엘비스의 이야기는 열세 살짜리 소년이 테네시 주 멤피스로 이사 오면서부터 시작된다.

기다란 연필을 연상시키는 홀쭉한 소년의 집은 너무 가난해 수돗물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숫기 없는 청년으로 성장한 엘비스는 가끔 교회에서 목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고, 어머니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기

타를 들고 교회 목사를 찾아가 레슨을 받았다.

그리고 동네에 있는 음반 가게를 돌아다니며 음악을 들었다.

엘비스는 흑인 음악을 주로 소개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애청자였는데 이때만 해도 미국인들은 흑인의 감성이 충
 
만한 블루스 음억보다 아기자기한 동화에 어울릴 법한 목가적인 노래를 사랑했다.

하지만 엘비스는 블루스의 아버지 머디워터스와 빅 조 터너 같은 흑인 가수들의 노래에 마음을 빼앗겼다.

훗날 젊은이들의 우상이 된 엘비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한 음악은 서부 포크송이 아닌 흑인 가스펠 음악이라 말하기

도 했다.

흑인 음악을 좋아하던 평범한 백인 청년에게는 꿈이 있었는데, 바로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음반을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1953년 어느 더운 여름날, 꿈은 현실이 됐다.

엘비스는 '선 레코드'라는 음반 레이블 회사 건물에 있는 녹음실로 걸어 들어가는 테이프에 녹음을 하고 싶더고 말

하며 음반값 3달러 98센트를 꺼내 놓았다.

녹음실 직원이 풋풋한 청년에게 '네 목소리는 누구와 비슷하지?"라고 물었다.

그러자 당돌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은데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엘비스는 행크스노, 빌먼로 같은 컨트리 가수들의 노래를 부를때도 자신만의 느낌을 가미하는 걸 잊지 않았고, 스

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블루스 음악을 흥얼거리며 감수성을 키웠다.

그리고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부른 빙 크로스비, 음악은 물론 영화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톱
가수들의 노래를 자신만의 목소리로 멋드러지게 소화하는 능력이 있었다.

엘비스는 수많은 가수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지만 누구에게 영향 받았냐는 질문을 받을 대면 재치 있는 말솜씨로 은

근 슬쩍 대답을 피했다.

심지어 존경하는 가수가 누구인지 언급하는 일도 드물었다.

자신의 음악은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1956년, 엘비스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노래 할때 누군가를 따라 한 적이 있냐고 묻곤 하죠.

하지만 전 여러분께 진심으로 애기 할수 있습니다.

전 지금까지 절대로 누굴 따라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엘비스가 어렸을 때 들은 음악들은 부지불식간에 그에게 영향을 줬다.

어린 시절의 엘비스도 다른 아이들처럼 발라드나 유행가를 따라 부르곤 했는데, 어느 날 오후 우연히 듣게 된 블루

스곡 하나가 그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음악평론가 피터 구럴닉이 쓴 엘비스의 전기 <멤피스행 마지막 기차>에는 블루스 음악에 푹 빠진 엘비스의 일화가

등장 한다.

기타리스트 스코티 무어가 들려준 엘비스와 함게 한 첫 녹음 날의 기억이다.

"녹음도 별 성과 없고 밤도 늦어서 다들 집에 돌아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엘비스가 갑자기 기타를 접더니 방방 뛰며 '대츠 올 라이트. 마마'를 부르는 거예요.

그러자 베이시스트 빌 블랙도 악기를 연주하며 날뛰기 시작했고, 결국 저도 그들과 함께 미친 듯 연주했었요.

이때 프로듀서 샘이 문을열어젖히더니 '지금 뭐 하는거야?'라고 물었고 우리는 '우리도 모르겠어요!'라고 답했죠.

그랬더니 샘이 '다시 해봐.

처음부터 제데로'라고 말하더군요."

샘은 엘비스의 노래를 녹음했고, 이 노래는 3일 후 라디오에 소개돼 큰 관심을 받았다.

'대츠 올 라이트, 마마'는 원래 흑인 가수 아서 빅보이 크루덥의 노래지만 지금은 엘비스의 데뷔곡 '대츠 올 라이

트'로 더 유명하다.


뉴스 1면을 장식한 무대 처음 으로 녹음실 문을 두드린 1953년부터 히트곡 '하트브레이크 호텔'을 발표한

1956년까지, 3년 동안 엘비스에게는 많이 일이 일어났다.

대형 레코드사 RCA와 계약 했으며 '로큰롤의 제왕'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갔다.

이후 발표한 곡들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엘비스는 소심한 신인 가수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손짓 하나로 관객들을 열

광시크는 월드 스타로 변신했다.

결렬하게 엉덩이를 흔드는 춤은 대중에게 아찔한 전율을 선사했지만 도발적이라는 이유로 세간의 논란이 되기도

했다.

<뉴욕 타임스>는 "가창력이라곤 전혀 없는 가수"라고 엘비스를 비난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무대를 사랑했다.

"제가 무대에서 추는 건 저속한 싸구려 춤이 아닙니다.

제 감정을 저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뿐이네요."

그의 노래와 춤은 없는 것을 일부러 만들어 낸 연출이 아니었다.

수많은 노래를 듣는 동안 그의 무의식속에 자리 잡은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재능의 표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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