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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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이 살았던 1831년에서 1849년까지, 파리는 어떤 곳이었을까?
어떤 공기가 흐르고 있었을까.
왜 리스트는 '쇼팽은 우리 사이를 유명처럼 왔다가 갔다'는 표현을 남겼을까.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때로 돌아가보고 싶다.
그 소망을 담아 쇼팽이 살았던 파리의 흔적을 따라 산책을 시작했다.
그가 주로 살았던 지역은 팔레 가르니에와 생라자르역 부근이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화려하고, 파리 시내에서도 거주비가 가장 비싼 구 가운데 하나다.
쇼팽이 살았던 주소를 들고 떠난 이 산책은 그러나, 쇼팽에 대한 그리움만 더 키우고 말았다.
그가 한때 이곳에서 살았다는 기록과 증언만 있을 뿐 그의 흔적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확인한 것은 길 이름과 번지수, 그리고 간혹 문 앞에 달린 흔적(쇼팽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살았는지 알려주는)뿐이었다.
그러나 그 길들 위에서 쇼팽을 상상했다.
쇼팽은 파리에서 리스트, 베를리오즈, 들라크루아 등 당대의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어둔 밤이 파리에 내려앉으면, 사람들은 쇼팽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 쇼팽의 연주를 제대로 감상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쇼팽의 내면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쇼팽은 이들과의 은밀한 교류를 즐겼다.
그가 큰 연주회장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전적으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쇼팽이 파리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보낸 방돔 광장은 오늘날 귀금속과 명품 상점들이 가득한, 화려한 거리로 변모했다.
방돔광장 12번지에는 자그마한 현판만이 한 천재 음악가의 죽음을 기리고 있다.
1849년 10월 17일 숨을 거둔 쇼팽은 마들랜느 성당 장례식을 거쳐 페르라쉐즈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의 유언대로, 쇼팽의 심장은 폴란드로 되돌아갔다.
지금도 쇼팽의 무덤에는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꺼질 줄 모르는 촛불과 수많은 꽂들이, 쇼팽의 음악에 대한 사랑을 고요하게 말한다.
그의 무덤 앞을 떠날 줄 모르는 사람들을,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바라봤다.
쇼팽의 피아노곡이 가슴을 울리기 시작한다.
'피아노 소나타3번'의 느린 악장 그의 음악 가운데 가장 은밀한 사랑의 사랑의 순간이 흐른다.
쇼팽과 상드, 둘의 심장이 멎을 듯한 그리움과 긴장감이 살아난다.
그 음악이 페르라쉐즈 공동묘지를 온통 채우고 있었다.
죽음의 순간, 외롭고 쓸쓸하게 떠났던 쇼팽은, 지금은 혼자가 아니다.
그의 묘지는 매우 절친한 동료이자 친구였던 플라이엘과 벨리니 그리고 케루비니의 묘지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그의 음악은 세대를 넘어 우리들의 가슴을 위무한다.
파리의 쇼팽, 그는 자신의 음악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어떤 공기가 흐르고 있었을까.
왜 리스트는 '쇼팽은 우리 사이를 유명처럼 왔다가 갔다'는 표현을 남겼을까.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때로 돌아가보고 싶다.
그 소망을 담아 쇼팽이 살았던 파리의 흔적을 따라 산책을 시작했다.
그가 주로 살았던 지역은 팔레 가르니에와 생라자르역 부근이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화려하고, 파리 시내에서도 거주비가 가장 비싼 구 가운데 하나다.
쇼팽이 살았던 주소를 들고 떠난 이 산책은 그러나, 쇼팽에 대한 그리움만 더 키우고 말았다.
그가 한때 이곳에서 살았다는 기록과 증언만 있을 뿐 그의 흔적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확인한 것은 길 이름과 번지수, 그리고 간혹 문 앞에 달린 흔적(쇼팽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살았는지 알려주는)뿐이었다.
그러나 그 길들 위에서 쇼팽을 상상했다.
쇼팽은 파리에서 리스트, 베를리오즈, 들라크루아 등 당대의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어둔 밤이 파리에 내려앉으면, 사람들은 쇼팽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 쇼팽의 연주를 제대로 감상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쇼팽의 내면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쇼팽은 이들과의 은밀한 교류를 즐겼다.
그가 큰 연주회장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전적으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쇼팽이 파리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보낸 방돔 광장은 오늘날 귀금속과 명품 상점들이 가득한, 화려한 거리로 변모했다.
방돔광장 12번지에는 자그마한 현판만이 한 천재 음악가의 죽음을 기리고 있다.
1849년 10월 17일 숨을 거둔 쇼팽은 마들랜느 성당 장례식을 거쳐 페르라쉐즈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의 유언대로, 쇼팽의 심장은 폴란드로 되돌아갔다.
지금도 쇼팽의 무덤에는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꺼질 줄 모르는 촛불과 수많은 꽂들이, 쇼팽의 음악에 대한 사랑을 고요하게 말한다.
그의 무덤 앞을 떠날 줄 모르는 사람들을,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바라봤다.
쇼팽의 피아노곡이 가슴을 울리기 시작한다.
'피아노 소나타3번'의 느린 악장 그의 음악 가운데 가장 은밀한 사랑의 사랑의 순간이 흐른다.
쇼팽과 상드, 둘의 심장이 멎을 듯한 그리움과 긴장감이 살아난다.
그 음악이 페르라쉐즈 공동묘지를 온통 채우고 있었다.
죽음의 순간, 외롭고 쓸쓸하게 떠났던 쇼팽은, 지금은 혼자가 아니다.
그의 묘지는 매우 절친한 동료이자 친구였던 플라이엘과 벨리니 그리고 케루비니의 묘지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그의 음악은 세대를 넘어 우리들의 가슴을 위무한다.
파리의 쇼팽, 그는 자신의 음악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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