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아날로그적 감수성에 귀 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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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생애 처음 가을을 맞이하는 순간이 있다.
단순히 물리적인 계절의 흐름에 따라 겪는 가을이 아니라, 가슴에서 느끼는 가을을 맞이하는 순간을 말이다.
아마 그 무렵은 막 사춘기에 접어든 시기. 어쪄면 그날 우리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빗자루를 들고 마당으로
내몰렸거나, 어쪄면 모처럼 나선 나들이로 잔뜩 기분이 들떠 있었을는 지도 모른다.
아무려나 우리는 그때, 마당 가득 또는 거리마다 수북이 쌓인 낙엽과 대면한다.
그때 우리는 처음 조우하게 되는데, 그 느낌을 표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때 처음 낙엽을 보며 가을 향기를 알게 됐고, 그때 처음 낙엽을 밟으며 '사각사각' 가을 소리를 듣게
됐다.
그리고 생애 처음 스러져버린 아름다움을 발견한 그날, 수북이 쌓인 낙엽을 한쪽 모퉁이로 쓸어내며, 난생처음 삶을
생각했다.
기억속에 존재하는 최초의 낙엽 쓸던 아침 혹은 끝 간 데 없이 이어진 단풍과 낙엽의 거리를 걷는 그 시간은 내 삶의
최초의 가을이 된다.
그런데 신기하기도 하지, 생애 처음으로 가을을 맞이하는 순간은, 또한 생애 처음 음악의 매력에 빠지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단풍의 붉은 마음과 낙엽의 스러지는 아름다움을 발견한 그 즈음부터, 대부분 형이나 언니의 방에서 가져온 라디오의
주파수를 돌려 가며 주로 사랑 타령인 유행가나 내용을 알지 못하는 팝송을 흥얼거리느라 종종 밤을 지새운다.
형편이 나은 집은 아버지의 서재를 드나들며 LP판의 회전음과 함께 클래식이나 샹송의 선율에 취했을지도...
가을과 음악의 함수 관계는 이때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다시아날로그다
세월은 음향 기기의 발전과 함께 흘렀다.
1990년대 초반에 등장한 CD가 LP를 삼켜 버렸고, 후반에는 MP3 음원이 세상을 지배 했다.
컴퓨터와 디지털 플레이어가 라디오를 대신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주파수를 맞추느라 라디오의 안테나를 조정하지 않았고, 턴테이블 바늘을 찾기 위해
음향기기 시장을 헤매지도 않았다.
아날로그는 촌스러움의 대명사로 종종 웃음 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다시, 사람들은 아날로그적 감수성 가득한 음악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디지털 음원과 시스템에 염증을 느낀 청중에게서 과거적 아날로그 방식을 재현한 음향 기기가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때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음악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왜 현대인은 적어도 음악에서 만큼은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회귀하고자 하는가. 왜 첨단의 시대에 아날로그
기기가 폭넓게 사랑받는 것일까?
그것은 아날로그만이 가지고 있는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디지털이 도저히 구현해내지 못하는 까닭이다.
디지털 음원은 미세한 파편들로 쪼개어 촘촘히 연결해 주파수 대역이 매우 넓고 각각의 음이 맑고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반면, 아날로그 음원은 주파수 대역이 좁은 대신 각각의 음이 연결돼 실제 연주와 마찬가지로 파동의
연속성이 그대로 간직되는 것이 특징이다.
가청 주파수를 벗어난 이른바 '배음'도 음악의 중요한 부분이다.
연주회장에 가보면 초저음과 초고음은 인간의 가청 주파수를 벗어나 귀로 인지되지 않지만 몸으로 직접 받아들이는
감동을 전하게 마련이다.
즉, 초저음과 초고음의 배음이 실제 연주하고자 하는 음의 발현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그에 따라 파동과 진동의 특성도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음의 자연성이다.
그런데 아날로그 음원은 이 자연성을 최대한 느낄 수 있는 반면, 디지털 음원은 그렇지 못한다.
이러한 음의 연결성과 자연성은 음의 직선성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아날로그 음원은 디지털 음원보다 작은 소리가
더 멀리까지 전달된다고 한다.
즉, 처음 들을 때는 디지털 음원이 휠씬 좋은 소리를 내지만 금세 피로를 느끼게 되는 반면, 아날로그
음원은 자연적인 소리를 연속적으로 전달해 청감이 갈수록 좋아진다.
현대인의 아날로그적 감수성으로의 회귀는, 그런 면에서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물리적인 계절의 흐름에 따라 겪는 가을이 아니라, 가슴에서 느끼는 가을을 맞이하는 순간을 말이다.
아마 그 무렵은 막 사춘기에 접어든 시기. 어쪄면 그날 우리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빗자루를 들고 마당으로
내몰렸거나, 어쪄면 모처럼 나선 나들이로 잔뜩 기분이 들떠 있었을는 지도 모른다.
아무려나 우리는 그때, 마당 가득 또는 거리마다 수북이 쌓인 낙엽과 대면한다.
그때 우리는 처음 조우하게 되는데, 그 느낌을 표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때 처음 낙엽을 보며 가을 향기를 알게 됐고, 그때 처음 낙엽을 밟으며 '사각사각' 가을 소리를 듣게
됐다.
그리고 생애 처음 스러져버린 아름다움을 발견한 그날, 수북이 쌓인 낙엽을 한쪽 모퉁이로 쓸어내며, 난생처음 삶을
생각했다.
기억속에 존재하는 최초의 낙엽 쓸던 아침 혹은 끝 간 데 없이 이어진 단풍과 낙엽의 거리를 걷는 그 시간은 내 삶의
최초의 가을이 된다.
그런데 신기하기도 하지, 생애 처음으로 가을을 맞이하는 순간은, 또한 생애 처음 음악의 매력에 빠지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단풍의 붉은 마음과 낙엽의 스러지는 아름다움을 발견한 그 즈음부터, 대부분 형이나 언니의 방에서 가져온 라디오의
주파수를 돌려 가며 주로 사랑 타령인 유행가나 내용을 알지 못하는 팝송을 흥얼거리느라 종종 밤을 지새운다.
형편이 나은 집은 아버지의 서재를 드나들며 LP판의 회전음과 함께 클래식이나 샹송의 선율에 취했을지도...
가을과 음악의 함수 관계는 이때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다시아날로그다
세월은 음향 기기의 발전과 함께 흘렀다.
1990년대 초반에 등장한 CD가 LP를 삼켜 버렸고, 후반에는 MP3 음원이 세상을 지배 했다.
컴퓨터와 디지털 플레이어가 라디오를 대신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주파수를 맞추느라 라디오의 안테나를 조정하지 않았고, 턴테이블 바늘을 찾기 위해
음향기기 시장을 헤매지도 않았다.
아날로그는 촌스러움의 대명사로 종종 웃음 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다시, 사람들은 아날로그적 감수성 가득한 음악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디지털 음원과 시스템에 염증을 느낀 청중에게서 과거적 아날로그 방식을 재현한 음향 기기가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때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음악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왜 현대인은 적어도 음악에서 만큼은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회귀하고자 하는가. 왜 첨단의 시대에 아날로그
기기가 폭넓게 사랑받는 것일까?
그것은 아날로그만이 가지고 있는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디지털이 도저히 구현해내지 못하는 까닭이다.
디지털 음원은 미세한 파편들로 쪼개어 촘촘히 연결해 주파수 대역이 매우 넓고 각각의 음이 맑고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반면, 아날로그 음원은 주파수 대역이 좁은 대신 각각의 음이 연결돼 실제 연주와 마찬가지로 파동의
연속성이 그대로 간직되는 것이 특징이다.
가청 주파수를 벗어난 이른바 '배음'도 음악의 중요한 부분이다.
연주회장에 가보면 초저음과 초고음은 인간의 가청 주파수를 벗어나 귀로 인지되지 않지만 몸으로 직접 받아들이는
감동을 전하게 마련이다.
즉, 초저음과 초고음의 배음이 실제 연주하고자 하는 음의 발현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그에 따라 파동과 진동의 특성도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음의 자연성이다.
그런데 아날로그 음원은 이 자연성을 최대한 느낄 수 있는 반면, 디지털 음원은 그렇지 못한다.
이러한 음의 연결성과 자연성은 음의 직선성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아날로그 음원은 디지털 음원보다 작은 소리가
더 멀리까지 전달된다고 한다.
즉, 처음 들을 때는 디지털 음원이 휠씬 좋은 소리를 내지만 금세 피로를 느끼게 되는 반면, 아날로그
음원은 자연적인 소리를 연속적으로 전달해 청감이 갈수록 좋아진다.
현대인의 아날로그적 감수성으로의 회귀는, 그런 면에서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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