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활동 재즈가수 나윤선
페이지 정보

본문
27세에 입문한 늦깎이 재즈가수
한국 가요에서 탱고까지 넓은 음색
데뷔 10년만에 유럽 무대 정상 올라
지난달 중순 프랑스 파리 시내의 '파리 파흐크 플로랄'(Paris Parc Floral) 공원. 어둠이 막
깔리기 시작할 저녁 무렵 한 동양 여성이 무대에 올랐다.
공연이 시작되자 얼마 후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차분히 노래를 불렀다.
공연은 2시간가량 진행됐고, 다행히 5000여 명의 관객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대의 주인공은 한국인으로 유럽 재즈의 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윤선(43)이었다.
"올 하반기 유러 투어의 첫 공연인데 비가 내려 걱정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 단 한 분도 자리를 뜨지 않아 얼마나 감동했는지 몰라요"
그는 재즈 불모지 한국에서 온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가수로 유럽 재즈계에서는 이미 유명
인사다.
1995년 프랑스로 건너간 뒤 딱 10년 만에 유럽에서 일궈낸 성과다.
콧대 높은 프랑스 재즈 잡지로부터 " 별 5개도 모자란 가수" 란 찬사를 얻었고 매년 전 세계
를 돌며 수십 차례 무대에 오른다.
2009년엔 프랑스 최고등급문화예술공로 훈장까지 받았다.
한평생 재즈만 알고 살아왔을 것 같은 그지만 스물 입곱에야 재즈의 길에 올랐다.
늦깎이 가수였기에 음악에 대한 욕심은 더욱 컸던 것.
" 대학 졸업 후 광고회사에 잠깐 다녔어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고민하던 찰나
에 친구에게 등 떠밀려 뮤지컬 오디션을 봤죠. "
노래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던 터라 그는 오디션을 통과해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
뷔하게 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때 부터였다.
" 노래만 부를 줄 알았지, 연기나 그 외 부분은 빵점이었어요.
남 앞에 나서기도 싫어하는 성격이라 뮤지컬 배우는 무리였죠.
어영부영하다 27세가 됐죠. "
막연히 노래를 공부하고 싶다고 말하던 나윤선에게 한 친구가 재즈를 권유했다.
" 실은 재즈가 뭔지도 모른 채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요.
(재즈가) 단지 대중음악의 원류라는 얘기를 듣고 거기에 매료됐죠. "
프랑스 파리에서 학교 4곳에 등록했다.
마치 늦바람 난 사람처럼 미친 듯이 재즈 음악 공부에 매달렸고, 얼마 되지 않아 해박한 재
즈 지식을 갖게 됐다.
그러나 또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
" 흑인 가수 특유의 끈적함, 스윙감이 제 목소리엔 없었어요.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된다는 그 절망감이 절 짓눌렀죠. "
재즈마저도 그만둬야 할까 고민하던 그에게 영국 재즈가수 노마 윈스턴은 구세주였다.
" 메조소프라노 톤 음색의 가녀린 목소리도 재즈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가수예요.
그제야 자신감을 갖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
그날부터 나윤선은 닥치는대로 노래를 불렀고 2001년 유럽 무대에서 데뷔했다.
그가 한국가요인 윤심덕의 '사의친미' 에서 탱고인 피아졸라의 ' 망각 ' 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재즈를 구사할 수 있는 건 이때의 경험 덕분이다.
동시에 그는 재즈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장르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 재즈는 편협한 장르가 아니에요. 어떤 목소리든, 어떤 리듬이든 다 받아들일 줄 아는
포용력을 가지고 있죠.
누구나 부르고 즐기는 대중적인 음악인 셈이에요. "
나윤선은 " 죽을 때까지 재즈 가수로 살고 싶다 "며 재즈에 대한 무한한 집착을 밝히기도
했다.
" 재즈는 와인과도 같죠. 시간이 지날수록 노래를 표현하는 감성이나 실력이 '숙성'돼요.
70.80대 재즈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면 난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역시 나이가 들면서 후배 가수들에게 그런 영감을 주고 싶죠.
일종의 책임감일지도 몰라요. "
유럽 재즈를 대표하는 독일 재즈 레이블 액트(ACT)에서 2008년에 발표한 앨범은 출시 2주
만에 음반 판매 1위를 기록한 뒤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보다 유럽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는 데 서운하진 않을까.
" 한국에서 그리 익숙하지 않은 장르인 '재즈'를 하는데도 국내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편"
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외에 더 많은 한국의 재즈 뮤지션들이 세계 무대를 경험해봤으면 한다는 소
망도 내비쳤다.
혼자보다 여럿이서 재즈를 알리고 싶다는 것.
재즈가 한국에서도 대중적인 장르로 자리 잡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의미에서였다.
" 클래식에선 유명 콩쿠르를 통해 우리나라 음악가들이 그 실력을 인정받았죠.
독일 오페라단에서는 한국 성악가들이 모두 귀국하면 문을 닫을 정도라고 해요.
재즈라고 그렇게 되지 말란 법 있나요.
한국 가요에서 탱고까지 넓은 음색
데뷔 10년만에 유럽 무대 정상 올라
지난달 중순 프랑스 파리 시내의 '파리 파흐크 플로랄'(Paris Parc Floral) 공원. 어둠이 막
깔리기 시작할 저녁 무렵 한 동양 여성이 무대에 올랐다.
공연이 시작되자 얼마 후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차분히 노래를 불렀다.
공연은 2시간가량 진행됐고, 다행히 5000여 명의 관객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대의 주인공은 한국인으로 유럽 재즈의 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윤선(43)이었다.
"올 하반기 유러 투어의 첫 공연인데 비가 내려 걱정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 단 한 분도 자리를 뜨지 않아 얼마나 감동했는지 몰라요"
그는 재즈 불모지 한국에서 온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가수로 유럽 재즈계에서는 이미 유명
인사다.
1995년 프랑스로 건너간 뒤 딱 10년 만에 유럽에서 일궈낸 성과다.
콧대 높은 프랑스 재즈 잡지로부터 " 별 5개도 모자란 가수" 란 찬사를 얻었고 매년 전 세계
를 돌며 수십 차례 무대에 오른다.
2009년엔 프랑스 최고등급문화예술공로 훈장까지 받았다.
한평생 재즈만 알고 살아왔을 것 같은 그지만 스물 입곱에야 재즈의 길에 올랐다.
늦깎이 가수였기에 음악에 대한 욕심은 더욱 컸던 것.
" 대학 졸업 후 광고회사에 잠깐 다녔어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고민하던 찰나
에 친구에게 등 떠밀려 뮤지컬 오디션을 봤죠. "
노래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던 터라 그는 오디션을 통과해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
뷔하게 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때 부터였다.
" 노래만 부를 줄 알았지, 연기나 그 외 부분은 빵점이었어요.
남 앞에 나서기도 싫어하는 성격이라 뮤지컬 배우는 무리였죠.
어영부영하다 27세가 됐죠. "
막연히 노래를 공부하고 싶다고 말하던 나윤선에게 한 친구가 재즈를 권유했다.
" 실은 재즈가 뭔지도 모른 채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요.
(재즈가) 단지 대중음악의 원류라는 얘기를 듣고 거기에 매료됐죠. "
프랑스 파리에서 학교 4곳에 등록했다.
마치 늦바람 난 사람처럼 미친 듯이 재즈 음악 공부에 매달렸고, 얼마 되지 않아 해박한 재
즈 지식을 갖게 됐다.
그러나 또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
" 흑인 가수 특유의 끈적함, 스윙감이 제 목소리엔 없었어요.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된다는 그 절망감이 절 짓눌렀죠. "
재즈마저도 그만둬야 할까 고민하던 그에게 영국 재즈가수 노마 윈스턴은 구세주였다.
" 메조소프라노 톤 음색의 가녀린 목소리도 재즈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가수예요.
그제야 자신감을 갖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
그날부터 나윤선은 닥치는대로 노래를 불렀고 2001년 유럽 무대에서 데뷔했다.
그가 한국가요인 윤심덕의 '사의친미' 에서 탱고인 피아졸라의 ' 망각 ' 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재즈를 구사할 수 있는 건 이때의 경험 덕분이다.
동시에 그는 재즈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장르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 재즈는 편협한 장르가 아니에요. 어떤 목소리든, 어떤 리듬이든 다 받아들일 줄 아는
포용력을 가지고 있죠.
누구나 부르고 즐기는 대중적인 음악인 셈이에요. "
나윤선은 " 죽을 때까지 재즈 가수로 살고 싶다 "며 재즈에 대한 무한한 집착을 밝히기도
했다.
" 재즈는 와인과도 같죠. 시간이 지날수록 노래를 표현하는 감성이나 실력이 '숙성'돼요.
70.80대 재즈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면 난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역시 나이가 들면서 후배 가수들에게 그런 영감을 주고 싶죠.
일종의 책임감일지도 몰라요. "
유럽 재즈를 대표하는 독일 재즈 레이블 액트(ACT)에서 2008년에 발표한 앨범은 출시 2주
만에 음반 판매 1위를 기록한 뒤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보다 유럽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는 데 서운하진 않을까.
" 한국에서 그리 익숙하지 않은 장르인 '재즈'를 하는데도 국내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편"
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외에 더 많은 한국의 재즈 뮤지션들이 세계 무대를 경험해봤으면 한다는 소
망도 내비쳤다.
혼자보다 여럿이서 재즈를 알리고 싶다는 것.
재즈가 한국에서도 대중적인 장르로 자리 잡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의미에서였다.
" 클래식에선 유명 콩쿠르를 통해 우리나라 음악가들이 그 실력을 인정받았죠.
독일 오페라단에서는 한국 성악가들이 모두 귀국하면 문을 닫을 정도라고 해요.
재즈라고 그렇게 되지 말란 법 있나요.
- 이전글고전주의 음악과 낭만주의 13.04.08
- 다음글불길한 교향곡 제9번에 계속 끌려 다니며 희롱당한 말러의 생애 13.04.0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