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이 작곡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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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년 베토벤은 가슴에 통증을 앓으면서 한 해를 시작했다.
하지만 곧 일에 몰두했다.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 Ode to Joy)>를 본격적으로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베토벤은 1777년부터 1781년까지 라틴 자연계 초등학교 티로시니움(Tirocinium)에서,
받은 교육이 정규교육의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그후로도 베토벤은 끊임없이 책을 읽고 혼자 힘으로 외국어를 공부했으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넓히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지식을 쌓고 연마했다.
베토벤에게는 어릴 때부터 한 가지 좋은 버릇이 있었다.
그것은 작곡을 할 때 엄청나게 많은 스케치를 하는 것이었다.
베토벤에게 있어 스케치야말로 작곡 공부였다.
악상이 떠오르면 스케치하고, 수정하고, 또 스케치하기를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발표도 쉽게 하지 않고 신중하게 했다.
예컨대 실러의 <환희의 송가>는 비엔나에 도착한 직후부터 스케치한 것으로 30년 동안이나,
고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베토벤이 실러가 1785년 발표한 <환희의 송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792년 비엔나로 출발하기,
직전 본에서 브로이닝 가의 형제자매, 베겔러,
그리고 베토벤이 본 대학의 강사 루트비히 피체니히(Ludwig Fichenich, 1768~1831)를 초대하여
환담을 할 때였다.
그때 피체니히가 실러의 시를 소개했고 베토벤은 "모든 사람은 형제가 된다(Alle Menschen
werden Bruder)."라는 구절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 직후 베토벤은 실러의 시를 바탕으로 작곡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밝혔고,
그 말을 들은 피체니하는 다음해 초 실러의 부인에게 보내는 안부편지에 이러한 내용을 언급했다고
한다. (베토벤은 1973년에 이미 곡을 붙였다고 하는 설이 있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처럼 베토벤은 비엔나에 정착한 후 해마다 5~10월이면 비엔나 교외의 작은,
마을을 옮겨 다니면서 살았다.
그는 오랜 시간 산책하면서 악상이 떠오르면 스케치북에 기록했다.
스케치북은 베토벤의 작곡방법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베토벤은 어떤 주제에 맞춘 즉흥연주에는 능했지만 어떤 한 곡의 모양새를 가다듬는데는 상당한
공을 들였다.
베토벤의 작품은 그것을 어떻게 작곡했는지, 동기는 무엇인지, 누구에게 헌정하고 싶은지 등과
관련하여 작곡 초기에 기록해둔 스케치북과 메모 등이 많이 남아 있다.
베토벤은 그런 자료를 보관해두었다가 나중에 다른 곡을 작곡할 때 재료로 사용했다.
예를 들면 1808년 완성한 <교향곡 제5번>은 1804년경 해둔 스케치 악보가 재료였다.
모차르트는 정반대였다.
1791년 12월 모차르트가 죽은 후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부인 콘스탄체가 가져온 <레퀴엠>
필사본 초고 악보를 보고 시기심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초고인데도 고친 흔적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살리에리는 이렇게 말했다.
"모차르트는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음악을 갖고 있어. 필요할 때 오선지에 쓰기만 하면 돼."
과장되게 비유하자면 모차르트는 거침없이 작곡을 했고, 베토벤은 애를 낳는 것처럼,
그것도 난산과 같이 공을 들이며 힘들여 작곡을 했다.
모차르트는 동시에 여러 악보대를 사용하여 이곳에는 오페라, 저곳에는 교향곡,
또 다른 곳에는 피아노 작품...... 이런 식으로 작곡을 했다.
반면 베토벤은 한 곡이 끝나기 전에는 다른 곡을 작곡하지 않았고,
도중에 다른 작품을 할 때에는 기존의 것은 밀쳐두고 한 작품씩 작업을 끝냈다.
사람은 공부하는 방법이 각각 다르다. (강의를 듣거나)생각나는 것을 '즉각 기록하는 방식'
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먼저듣고 나중에 생각하고 또 정리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말하면서 그것을 스스로 정리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다.
원고 준비 없이 말하는 성직자, 교사, 교수, 변호사 등이 이 그루에 속한다.
또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며 자신도 배우는'경우도 있다.
교회의 간증이나 우수 판매원의 판매비결 발표회의 방식이 그렇다.
작가들처럼 '직접 글을 쓰면서 스스로 정리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켈란젤로를 비롯하여 많은 미술가들처럼 '실제로 작업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베토벤은 어릴 때는 물론 그 후로도 체계적으로 음악수업을 받은적이 없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울 때도 기존의 악보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즉흥연주를 하며 성장했다.
비엔나에 와서 많은 스승들에게서 작곡을 배웠지만 역시 스스로 '실제 작업을 하면서'
작품을 다듬어나갔다.
하지만 곧 일에 몰두했다.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 Ode to Joy)>를 본격적으로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베토벤은 1777년부터 1781년까지 라틴 자연계 초등학교 티로시니움(Tirocinium)에서,
받은 교육이 정규교육의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그후로도 베토벤은 끊임없이 책을 읽고 혼자 힘으로 외국어를 공부했으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넓히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지식을 쌓고 연마했다.
베토벤에게는 어릴 때부터 한 가지 좋은 버릇이 있었다.
그것은 작곡을 할 때 엄청나게 많은 스케치를 하는 것이었다.
베토벤에게 있어 스케치야말로 작곡 공부였다.
악상이 떠오르면 스케치하고, 수정하고, 또 스케치하기를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발표도 쉽게 하지 않고 신중하게 했다.
예컨대 실러의 <환희의 송가>는 비엔나에 도착한 직후부터 스케치한 것으로 30년 동안이나,
고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베토벤이 실러가 1785년 발표한 <환희의 송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792년 비엔나로 출발하기,
직전 본에서 브로이닝 가의 형제자매, 베겔러,
그리고 베토벤이 본 대학의 강사 루트비히 피체니히(Ludwig Fichenich, 1768~1831)를 초대하여
환담을 할 때였다.
그때 피체니히가 실러의 시를 소개했고 베토벤은 "모든 사람은 형제가 된다(Alle Menschen
werden Bruder)."라는 구절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 직후 베토벤은 실러의 시를 바탕으로 작곡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밝혔고,
그 말을 들은 피체니하는 다음해 초 실러의 부인에게 보내는 안부편지에 이러한 내용을 언급했다고
한다. (베토벤은 1973년에 이미 곡을 붙였다고 하는 설이 있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처럼 베토벤은 비엔나에 정착한 후 해마다 5~10월이면 비엔나 교외의 작은,
마을을 옮겨 다니면서 살았다.
그는 오랜 시간 산책하면서 악상이 떠오르면 스케치북에 기록했다.
스케치북은 베토벤의 작곡방법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베토벤은 어떤 주제에 맞춘 즉흥연주에는 능했지만 어떤 한 곡의 모양새를 가다듬는데는 상당한
공을 들였다.
베토벤의 작품은 그것을 어떻게 작곡했는지, 동기는 무엇인지, 누구에게 헌정하고 싶은지 등과
관련하여 작곡 초기에 기록해둔 스케치북과 메모 등이 많이 남아 있다.
베토벤은 그런 자료를 보관해두었다가 나중에 다른 곡을 작곡할 때 재료로 사용했다.
예를 들면 1808년 완성한 <교향곡 제5번>은 1804년경 해둔 스케치 악보가 재료였다.
모차르트는 정반대였다.
1791년 12월 모차르트가 죽은 후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부인 콘스탄체가 가져온 <레퀴엠>
필사본 초고 악보를 보고 시기심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초고인데도 고친 흔적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살리에리는 이렇게 말했다.
"모차르트는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음악을 갖고 있어. 필요할 때 오선지에 쓰기만 하면 돼."
과장되게 비유하자면 모차르트는 거침없이 작곡을 했고, 베토벤은 애를 낳는 것처럼,
그것도 난산과 같이 공을 들이며 힘들여 작곡을 했다.
모차르트는 동시에 여러 악보대를 사용하여 이곳에는 오페라, 저곳에는 교향곡,
또 다른 곳에는 피아노 작품...... 이런 식으로 작곡을 했다.
반면 베토벤은 한 곡이 끝나기 전에는 다른 곡을 작곡하지 않았고,
도중에 다른 작품을 할 때에는 기존의 것은 밀쳐두고 한 작품씩 작업을 끝냈다.
사람은 공부하는 방법이 각각 다르다. (강의를 듣거나)생각나는 것을 '즉각 기록하는 방식'
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먼저듣고 나중에 생각하고 또 정리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말하면서 그것을 스스로 정리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다.
원고 준비 없이 말하는 성직자, 교사, 교수, 변호사 등이 이 그루에 속한다.
또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며 자신도 배우는'경우도 있다.
교회의 간증이나 우수 판매원의 판매비결 발표회의 방식이 그렇다.
작가들처럼 '직접 글을 쓰면서 스스로 정리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켈란젤로를 비롯하여 많은 미술가들처럼 '실제로 작업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베토벤은 어릴 때는 물론 그 후로도 체계적으로 음악수업을 받은적이 없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울 때도 기존의 악보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즉흥연주를 하며 성장했다.
비엔나에 와서 많은 스승들에게서 작곡을 배웠지만 역시 스스로 '실제 작업을 하면서'
작품을 다듬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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