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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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자신을 황제라 선포하다.
5월 18일 페르디난트 라이스가 베토벤에게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커다란 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세요? 5월 20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겠다고 선포했어요!"
베토벤은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아서 이렇게 말했다.
"라이스, 침착하게. 방금 한 말을 이 노트에 써보게!"
글을 읽고 난 베토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역시 나폴레옹도 한낱 보잘것없는 졸장부에 지나지 않는군! 아마 이제부터는 인간의 권리
를 발밑에 깔아뭉개고 자신의 야심만 충족시키려 하겠지.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한층
높은 자리에서 폭군이 될 게 틀림없어!"
그렇게 말하고는 '보나파르트를 위하여' 라는 제목이 붙은 악보를 박박 찢어 바닥에 내동댕
이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 에피소드는 민주 공화주의를 원하는 한 지식인이 독재자에게 과감히 맞서는 영웅적인
모범으로 회자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리이스가 그 소식을 전하기 직전은 베토벤이 보나파르트에게
헌정하려던 그 악보를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파리로 보내려고 하던 찰나였던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베토벤은 화가 나서 책상으로 달려가 그 위에 있던, 위쪽에는 '보나파르트
에게', 아래쪽에는 '루트비히판 베토벤' 이라고 씌어 있는 총보의 겉표지를 떼어내었고, 그
다음 악보 첫 페이지의 'Intitotula Bonaparte(보나파르트로 제목을 붙인다)' 라는 글씨를
종이가 구멍이 날 정도로 심하게 문질렀다.
박물관에 보존된 악보에는 'Intitotula Bonaparte' 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난 뒤인 1806년 10월, 제목을 '영웅 교향곡, 위대한 인물에 대한
추억을 기리며'로 다시 정해 출판 했다.
이를 간단히 <영웅 교향곡>이라고 부른다.
<교향곡 제3번>이 <영웅 교향곡>으로 불리게 된 데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베토벤은 1804년 8월 26일 <교향곡 제3번>을 출판사에 보낼때 편지에 "작품의 표제는 사실
'보나파르트'예요"라고 썼다.
그 사이에 로프코비츠 대공이, 이 곡을 자신에게 헌정하고 반년 동안 독점 연주권을 주면
베토벤에게 400두카트를 주겠다고 제안을 한 것이다.
베토벤은 이 곡을 나폴레옹에게 헌정한다 해도 당장 어떤 자리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므로
우선 단기적인 실익을 확보하기 위해 곡을 로프코비츠에게 헌정하기로 한다.
그러나 나중에 출판을 할 때는 작품의 이름을 'Bonaparte Symphony'로 할 작정이었다.
그러니까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후에도 베토벤은 같은 제목을 고수했던 것이다.
2년 후 출판할 때 곡의 이름을 <영웅 교향곡(Sinfonia Eroica)>으로 바꾼 한 가지 이유는
베르나도트 장군이 그렇게 제안을 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5월 18일 페르디난트 라이스가 베토벤에게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커다란 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세요? 5월 20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겠다고 선포했어요!"
베토벤은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아서 이렇게 말했다.
"라이스, 침착하게. 방금 한 말을 이 노트에 써보게!"
글을 읽고 난 베토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역시 나폴레옹도 한낱 보잘것없는 졸장부에 지나지 않는군! 아마 이제부터는 인간의 권리
를 발밑에 깔아뭉개고 자신의 야심만 충족시키려 하겠지.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한층
높은 자리에서 폭군이 될 게 틀림없어!"
그렇게 말하고는 '보나파르트를 위하여' 라는 제목이 붙은 악보를 박박 찢어 바닥에 내동댕
이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 에피소드는 민주 공화주의를 원하는 한 지식인이 독재자에게 과감히 맞서는 영웅적인
모범으로 회자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리이스가 그 소식을 전하기 직전은 베토벤이 보나파르트에게
헌정하려던 그 악보를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파리로 보내려고 하던 찰나였던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베토벤은 화가 나서 책상으로 달려가 그 위에 있던, 위쪽에는 '보나파르트
에게', 아래쪽에는 '루트비히판 베토벤' 이라고 씌어 있는 총보의 겉표지를 떼어내었고, 그
다음 악보 첫 페이지의 'Intitotula Bonaparte(보나파르트로 제목을 붙인다)' 라는 글씨를
종이가 구멍이 날 정도로 심하게 문질렀다.
박물관에 보존된 악보에는 'Intitotula Bonaparte' 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난 뒤인 1806년 10월, 제목을 '영웅 교향곡, 위대한 인물에 대한
추억을 기리며'로 다시 정해 출판 했다.
이를 간단히 <영웅 교향곡>이라고 부른다.
<교향곡 제3번>이 <영웅 교향곡>으로 불리게 된 데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베토벤은 1804년 8월 26일 <교향곡 제3번>을 출판사에 보낼때 편지에 "작품의 표제는 사실
'보나파르트'예요"라고 썼다.
그 사이에 로프코비츠 대공이, 이 곡을 자신에게 헌정하고 반년 동안 독점 연주권을 주면
베토벤에게 400두카트를 주겠다고 제안을 한 것이다.
베토벤은 이 곡을 나폴레옹에게 헌정한다 해도 당장 어떤 자리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므로
우선 단기적인 실익을 확보하기 위해 곡을 로프코비츠에게 헌정하기로 한다.
그러나 나중에 출판을 할 때는 작품의 이름을 'Bonaparte Symphony'로 할 작정이었다.
그러니까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후에도 베토벤은 같은 제목을 고수했던 것이다.
2년 후 출판할 때 곡의 이름을 <영웅 교향곡(Sinfonia Eroica)>으로 바꾼 한 가지 이유는
베르나도트 장군이 그렇게 제안을 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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